• 최종편집 2024-05-04(토)
 
책들이 조금씩 늙어간다


정  영  희



책을 읽던 아이가 조금씩 늙어간다

새의 날개가 모르는 사이에 낡아가듯이

-눈 온다

소리보다 늦게 도착한 눈송이 몇

유리창에 기대서 책을 읽다 사라진다

사라지는 순간에도 흔적은 남게 마련이어서

갇힌 말들이 눈송이처럼 글썽인다

페이지마다 갇힌 문장들에도

시차는 있다

울음의 시차를 느낄 때 책은 제 안에 꺼지지 않는

불멸의 페이지를 가만히 펼쳐 보곤한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일어나는 공기의 떨림

뭉쳐져 있는 문장들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창틈으로 바람의 소용돌이가 조금씩 다녀가고

책들은 보이지 않게 자리를 이동한다

속으로 꾹꾹 눌려 두었던 구절들이

입술을 달싹이며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무의미한 독백들이

책장 속에 빽빽하게 꽂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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